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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상 규명 == 사건 직후 콘스탄티노폴 밖에는 루이나군 발표만 전해졌다. 국제인권감시단은 생존자 몇 명의 증언을 모아 1978년 5월 "조직적인 민간인 대학살"이라는 보고서를 냈고 국제 조사단 파견을 요구했으나, 루이나 정부는 "작전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조사단의 입국을 거부했다. 몇 달 뒤 본국에 군정이 들어서면서 이 문제는 루이나 안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전환점은 1982년 5월 13일 루이나 진보 일간지 《라 부아》의 보도였다. 제2공병연대에서 복무한 징집병 쥘리앙 P. 마르소는 봉쇄 작업 당시 소형 카메라로 용접된 출입구와 철망을 찍어 두었고, 전역 뒤 필름을 《라 부아》에 넘겼다. 사진과 함께 실린 그의 인터뷰는 "적과의 교전"이라는 군의 설명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루이나군이 철수한 뒤였기 때문에 기자들도 처음으로 현장과 생존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1996년 9월 베르자 구역 외곽의 공터에서 97구의 유해가 묻힌 매장지가 발견되었다. 유해 가운데 상당수는 어린이였고, 일부에서는 총상이 확인되었다. 2003년에는 앞서 서술한 치안행정국 문서가 기밀 해제되면서 첩보 조작의 정황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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